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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약속 지켜 테헤란밸리에 둥지 트다 수많은 벤처기업의 생존경쟁 현장인 테헤란밸리, 그 한편에 자리 잡은 벤처회사 이너버스(innerbus). 파티션과 컴퓨터,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원들…. 대개의 회사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뭉친 두 남자의 철학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창업을 약속했고 이를 지켜가고 있는 두 사람, 아주대 89학번 동기인 이을석(전자), 류만석(산공)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친구끼리 동업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대학교 3학년 때 했던 약속을 지켜, 사업을 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은 달랐지만 미술반 동아리인 아미에서 같이 활동했어요. 같이 자취도 했구요. 같은 날 군대가고, 같은 날 제대하고, 특별한 인연이긴 하죠. 대학 3학년 때 각자 회사를 2년만 다니고 뭉쳐서 사업을 하자고 약속했죠. 그래서 꼭 2년째 되는 날 둘이 동시에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시원스런 외모를 가진 류만석 부사장이 웃으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그들이 처음 시작한 사업은 인터넷 주문배달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삼성전자와 대우전자라는 대기업의 우산을 벗어던지고 시작한 사업은 1년여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사업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 2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 자신 있게 회사를 나왔는데 실제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실패를 인정한 두 사람은 각자 실력을 조금 더 키운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일반 기업체로 컴백. 이을석 사장은 인텔과 트랜드 마이크로사에서 류만석 부사장은 웅진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맡은 분야 외에 제품기획, 마케팅, 개발, 고객지원 등 회사 운영의 전반적인 내용을 열심히 익혔고, 2년 후 다시 지금의 이너버스를 창업했다. 로그분석 및 통계전문회사,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로그분석 및 통계전문 회사인 이너버스는 최근 외국계 경쟁사를 물리치고 우리나라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초기에는 4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1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 전자도서관을 비롯해서 많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기업들이 이너버스의 웹로그분석기 ‘Hit Analyzer’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은 웹사이트 방문고객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방문경로, 방문패턴, 검색엔진, 검색어, 경로페이지, 인기페이지, 인트라넷 이용현황, 전자도서 이용현황 등 192가지의 구체적인 통계를 보여준다. 또 인터넷을 통한 각종 바이러스와 해킹공격에 대한 통계를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인 웹서버 운영과 웹사이트 방문분석에 대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웹서버와 방화벽 로그분석을 주로 하지만 앞으로는 시스템 로그화일, 라우터 로그화일 등 모든 로그화일을 분석, 통계처리해서 관리자가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기업으로 이너버스의 로고는 태극기의 건곤감리(乾坤坎離)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이 외국회사를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한국 현실에 맞도록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운영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더 많은 곳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국형 기업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이들은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등 아시아권 틈새시장을 겨냥해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갈 생각이다. 외로운 사업의 길, 든든한 친구 함께해 좋다 대학에서 미술반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고, 현재도 계속 후배들과의 모임에 참석한다는 이들은 대학에서의 동아리 활동이 현재의 일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디자인감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술에서만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면에서의 제품디자인, 기능적·인간공학적인 면에서의 설계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디자인감각이 제품을 보다 수요자 중심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학에서의 동아리 활동이 사회생활에서 어떤 형태로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외에도 이을석 사장은 94년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에서 학부생으로는 유일하게 수상, 화제를 모으기도 하는 등 대학생활을 열심히 한 두 사람의 성실함이 사회생활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류만석 부사장은 후배들에게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모두 누려보라고 이야기한다. “동아리 활동과 각종 단체 활동을 통해서 단체생활 능력과 리더십을 기를 수 있습니다. 또 대학생으로서 자유롭게 사고하고, 고민해야 사회생활에서 올바른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이사장과 류부사장의 모교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IT업계에서 활동하면서 항상 아주대인임이 자랑스러웠다고. 업계에서도 아주대에 대한 평판이 매우 좋다고 귀뜸 해주기도 했다. 현재 아주대 출신으로 IT분야에서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중견급 간부들과의 모임도 활발하다. 모임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모교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사장과 류부사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너버스의 제품을 모교에 기증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의견다툼이나 갈등이 없었냐는 질문에 업무적인 일로 의견의 차이를 보인 적은 있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갈등해 본 적은 없단다. 사내에서는 철저하게 경어를 사용하고 연고배제의 원칙과 자율적인 경영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다. ‘사업이라는 것이 외로운 일인데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좋다’는 말에서 그들의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2003 Korean Technology Fast 50에 아주대가 서울대, 연·고대에 이어 많은 CEO를 배출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기술력과 철학이 분명한 이을석 사장, 류만석 부사장 같은 동문들의 눈부신 활약이 일군 성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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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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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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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서우석, 처음 컴퓨터를 접하던 날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수학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곤 했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보통 상품을 주었는데, 나는 상품대신 학교 컴퓨터실의 열쇠를 원했다. 당시 컴퓨터실은 학생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방법은 그 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대회에 나갔고, 그때마다 입상을 해서, 자연스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던 것이다. 그땐 삼각형의 넓이 계산과 같이 수학공식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소년 서우석, 프로그래밍에 푹 빠지다 이미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컴퓨터 경진대회를 준비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탄탄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의 반대로 컴퓨터를 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모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운 좋게 겨우겨우 10명 중에 10등으로 선발되긴 했는데, 그 중 3명만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 때 3등 안에 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마도 내가 살아온 시간 중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새내기 서우석, 아주대를 선택하다 프로그래밍에 빠져있는 동안 학교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문득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이후 학과공부에만 전념했고 그 결과 아주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미 전공은 결정한 상태였고, 어느 대학에 가느냐를 결정해야 했는데, 원서접수를 하고 면접을 보면서 아주대를 선택했다. 다른 대학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대학생활을 만끽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동아리나 학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이다. 나는 C.C.라는 학회와 볼랜드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그 때 학회에서 만들었던 프로그램들, 공부했던 내용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청년 서우석, 안철수 연구소에 입성하다 3학년 2학기에 휴학을 하고 ‘포씨소프트’라는 회사에서 병역특례요원으로 시작했다. 대학생활 중 외국의 컴퓨터관련 유명사이트에 글을 올린 것을 보고 ‘포씨소프트’ 사장께서 연락을 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정말 열심히 회사생활을 했던 것 같다. 처음 입사했을 때 3명이었던 사원이 48명까지 성장했으니 말이다. ‘포씨 소프트’에서 액티브 튜터라는 제품을 완성하고 나서 곧바로 ‘안철수연구소’로 이직하게 되었다. 사실 ‘안철수연구소’는 대학생활을 마치기 전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안철수연구소’는 기술력이 뛰어난 곳이다. 그곳에서 고수라고 불릴만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안철수연구소’에서는 지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인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주인 서우석,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 커뮤니티 2년 연속 MVP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있다. 프로그래밍을 진정으로 즐기고 기술적인 내용을 좋아하며 남들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리고 그 모델 중에 하나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VP 이었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수여하는 MVP는 아시아에서는 선정하지 않았는데, 2년 전부터 이 프로그램이 아시아권에서도 시행되기 시작했다. 첫 해에 총 21명에게 MVP를 수여했는데, 운 좋게도 그 안에 내 이름이 포함되었다. MVP에 선발되고 난 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주최하는 각종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대외적인 활동도 많아졌다. 유학생 서우석, 미국을 경험하고 돌아오다 3년여 동안의 병역특례 후 복학하여 학교에서 지원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는 시카고에 있는 IIT(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실시하는 IT집중과정 프로그램을 통해 내 꿈을 이루었다. 나는 그곳에서 동아리에 가입하고 연중 행사로 벌어지는 International Festival의 Spot-Light를 다루는 행사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열심히 생활하려고 노력했더니 역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그중 한국에 돌아오기 전 아주대생 10명이 한 팀이 되어 모토로라에서 한 인턴십 과정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인턴십 기간에는 아주인의 파워를 보여주기 위해 팀원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서우석, 그가 꿈꾸는 미래는… 내가 꿈꾸는 미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일들을 즐기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학과 테스팅, 디버깅 쪽에 관심이 많아서 해당 분야의 연구실에 입학하거나 사회경험을 쌓아서 20년쯤 후에는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들처럼 인재양성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싶다.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보다 많이 경험하고 항상 자만하지 않으며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또 꿈은 항상 원대하게 가지되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오늘의 열정이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도록 나를 길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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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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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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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경쟁, 그 최전방에서 신세계를 열어가다 김명찬 인텔코리아 CEO 김명찬 동문을 만나기로 한 시간. 사장실로 곧 안내를 받겠거니 생각하며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작은 회의실. 김명찬 동문은 사장실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았다. 대개의 외국계열 회사가 그러하듯 유연한 기업문화의 한 단면이려니 생각하면서도 회사 대표가 직원들과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한다는 사실이 사뭇 신선하기만 했다. 입사 13년 만에 최고경영자로 김명찬 동문이 인텔코리아의 대표로 선임된 것은 지난 2001년 3월. 88년에 입사한지 13년 만의 일이었다. 고속승진이었다. 40대에 외국기업 CEO에 오른 비결이 무엇일까. “세일즈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동안 리셀러, 아키텍처 영업 등 다양한 기술영업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시장과 고객을 보는 안목을 갖췄다고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인텔이라는 회사의 비전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성장해 온 정통 인텔맨이다. 채널관리, 재판매 부문, 아키텍쳐 세일즈, 투자 담당 상무를 거치면서 한 계단씩 CEO로서의 능력을 준비해온 것이다. 세계적 기업을 이끌어가는 힘, 집중하는 마음 인텔은 시장 점유율85∼90%를 차지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최대 메이커다. 전 세계 45개국에 85,000여명의 직원이 움직이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미국의 본사 외에도 중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에 75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35년간 세계를 바꿔 온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 혁명을 이끄는 기술을 개발해온 회사답게 최근에는 인터넷 무선 접속을 가능케 하는 통합칩을 출시하고, CPU 4기가도 개발해냈다. 이런 세계적인 기업의 한국지사를 이끌어가는 김명찬 동문의 다짐은 그래서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강한 리더십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CEO가 되고 싶다며 인격과 위험관리능력, 판단력, 예지력의 중요성도 늘 잊지 않는 덕목이라고 한다.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는 앤디 그로브의 말은 제 일과 삶을 이끌어주는 격언과도 같습니다.”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전 회장이다. 그의 확고한 사업철학과 삶의 자세에서 배울 점이 많고, 그래서 존경한다고. 김 동문은 그 말이 품은 뜻처럼 항상 고객에 집중하는 비즈니스를 펼치려 한단다. 그것이 곧 인텔코리아 대표로서의 신념이기도 하다. 새롭게 기획되어 추진되는 일의 전 과정마다 무섭도록 몰두하며 일을 풀어나가는 힘이야 말로 김 동문의 오늘을 만들어 온 산파였다. 꿈처럼 다가올 내일, 그 중심에 서서 아무리 빨리 앞서가도 결코 쉴 수가 없는 것이 CPU의 발전속도이고, 김명찬 동문을 비롯한 직원들은 이 속도의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지난 3월엔 인텔R&D센터 발족식이 있었다. 인텔코리아에게는 그 속도의 경쟁에서 더 앞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센터에서는 디지털홈과 무선인터넷 분야 기술이 개발될 예정이며, 본사에서 20여명이 파견돼 앞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인텔 본사가 해외에 새운 연구개발센터 가운데 디지털홈에 초점을 맞춘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머지않아 이 센터에서 우리들 삶의 방식과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을 신기술이 움트게 될 것이며, 그 중심엔 김명찬 동문이 서 있다. 30년 전, 원천골 실험실에서 꿈을 키우던 한 전자공학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의 핵심이 되었다. 이제 그가 새롭게 펼쳐가는 기술경영의 진면목을 기대해 본다. 꿈처럼 다가올 신세계를 그려보면서 말이다. 김명찬 인텔코리아 대표 1978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83~1987 LG상사 1988~2000 인텔코리아 영업부 시스템 세일즈 엔지니어, RCO Area(리셀러 영업부) 세일즈매니저, IA(인텔 아키텍처) 세일즈 이사, 상무 2001.3. 인텔코리아 대표 2004. 4. 정보통신의 날, 국무총리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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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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